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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치주의 유감?
정혁진변호사  |  cmkcap@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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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8.11  21:3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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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정혁진 변호사(법무법인정진)

우리나라 법무부 홈페이지 주소는 www.moj.go.kr 이다. 여기서 moj는 무엇일까? 홈페이지 우측 상단의 English 부분을 클릭해 보면 답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Ministry of Justice. 즉, 우리나라 ‘법무부’의 영문명은 ‘Ministry of Law’가 아니고 ‘Ministry of Justice’인 것이다. 다시 말해 ‘법 =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 대법원 로비에는 ‘정의의 여신상’이 서 있고, 필자가 다니던 법과대학의 조그마한 광장에도 ‘정의의 종’이 놓여 있었다.

그렇다면 법은 과연 ‘언제나’ 정의인가? ‘쥬라기 공원’이라는 소설로 유명한 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은 ‘공포의 제국’이라는 작품에서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은 분쟁해결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라고 썼는데, 법률가로서 이런 저런 경력과 경험을 쌓다 보니, 법은 정의라는 말보다는 분쟁해결수단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더 와 닿는다. 법이라는 것도 결국 불완전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어서 오류가 없을 수 없고, 게다가 법은 일반적, 추상적 규정일 뿐이라 구체적이고 개별적 사안에 들어 맞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이다.

II.

요즘 검찰총장의 말 한 마디가 화제다. ‘법의 지배(Rule of Law)’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법을 다루는 검찰총장이 법의 지배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으니, 결국 검찰총장이 법을 이용해서 ‘큰 꿈’을 이루려는 것일까?

신임검사 신고식에서 했다는 그의 말을 한 번 찾아보았다. “자유민주주의는 법의 지배(Rule of law)를 통해 실현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검찰총장의 말에 대해서 어떤 국회의원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을 지배하는 것은 양심이고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상식”이라고 하면서 “법은 양심과 상식의 경계를 정하는 도구”라며 “일반인에게 ‘법의 지배’ 같은 무서운 말은 위험하게 들린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법치주의(Rule of law)를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 말은 곧 ‘내 말이 법이다’라는 말과 같은 뜻이었다.

반면 법치주의는 “사람이 아니라 법이 국가를 통치한다”는 것이다. 즉, 그것은 엄격한 법에 의한 통치를 말하는 고대 법가 사상과는 달리 권력 분립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국민의 주권을 대표하는 의회가 제정하는 법률에 의하여 국가활동이 규율되며, 법의 지배원리에 따라 규범의 잣대로서 폭력이나 인간의 주관이 아닌 법을 적용하여 불가침성의 인권을 보장하려는 목적을 달성케 한다는 원리인 것이다.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은 법치주의를 그 기본원리의 하나로 하고 있으며, 법치주의는 행정작용에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법률의 근거가 요청된다는 법률유보를 그 핵심적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법률유보원칙은 단순히 행정작용이 법률에 근거를 두기만 하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와 그 구성원에게 기본적이고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영역, 특히 국민의 기본권실현에 관련된 영역에 있어서는 행정에 맡길 것이 아니라 국민의 대표자인 입법자 스스로 그 본질적 사항에 대하여 결정하여야 한다는 요구까지 내포하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이른바 의회유보원칙). 그런데 입법자가 형식적 법률로 스스로 규율하여야 하는 사항이 어떤 것인가는 일률적으로 획정할 수 없고 구체적 사례에서 관련된 이익 내지 가치의 중요성, 규제 내지 침해의 정도와 방법 등을 고려하여 개별적으로 결정할 수 있을 뿐이나, 적어도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자유나 권리를 제한할 때에는 그 제한의 본질적인 사항에 관한 한 입법자가 법률로써 스스로 규율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법치주의를 쟁취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피가 전세계적으로 뿌려졌는지 모른다.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일제 강점기에는 법률이 아닌 조선총독부령에 의하여 사회가 규율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 끝에 비로소 실질적인 법치주의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III.

법치주의에 있어서 법은 정의를 의미한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은 정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할 수 있도록 입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국회의원들에게 그 많은 혜택들이 주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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