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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에 살어리랏다
윤기평  |  cmkcap@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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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7.23  00: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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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의 중소기업 회장노릇을 끝으로 30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 때를 맞추어 그 퇴직의 을씨년스러움을 보다 확실하게 증폭시키는 사건이 생겼다. 이미 5년 전에 서울생활을 접고 덕소강변에 터전을 잡은 것은 은퇴 후의 생활에 유유히 연착류하려는 시도였고,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산책할 수 있는 한강상류의 강변길과 골짜기로 이어지는 산모퉁이 길들은 그러한 나의 계획에 충분히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퇴직이 임박한 이즈음에 생각지도 않게 양평으로 이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으니 이야말로 운명적인 돌발사건이 아닐 수 없다.

3년 전에 아내가 양평읍의 변두리에 새로 짓는 아파트를 분양받은 적이 있다. 입주전에 전매가 가능한 지역이니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집값이 오르면 냉큼 팔아서 시세 차익을 노려보자는 계산이었는데 이게 그만 큰 낭패를 불러왔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전국적으로 미분양아파트의 수가 늘어나고 가격이 곤두박질을 치더니 이제는 거래마저 뚝 끊겨버린 것이다. 팔리지도 않고 제값으로 전세를 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고 보니 입주시기에 임박하여서는 살고 있던 덕소강변의 집을 전세주고 꼼짝없이 양평의 새집으로 밀려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함께 살던 딸아이도 이 참에 제 직장근처에 방을 얻어 독립시키고 나니 양평집에서는 아내와 내가 단둘이 살게 되었는데, 게다가 덕소에 직장을 가진 아내가 아침에 출근을 하고 나면 이제 막 은퇴한 나 혼자서 객지의 빈집을 지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나의 퇴직이야 예견된 일이라고 하지만 지금까지의 생활반경으로부터 모든 면에서 너무도 동떨어진 양평에서의 귀양살이가 바야흐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내게도 이 귀양살이를 오히려 아주 의미있고 행복한 시절로 만들어야겠다는 오기 같은 것이 생겼다. 누구나 직장에서 물러나고 보면 언젠가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까지는 한동안 백수에 실업자일 수밖에 없을 것인데 나의 경우는 공기 좋고 물 맑은 양평에서 완벽한 은퇴생활을 혼자 즐길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이만한 축복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우선 볕이 잘 드는 방을 서재로 정하고 지필묵을 정돈하여 서예가의 작업실로 손색이 없게 꾸몄다. 그리고 창밖의 베란다에는 여러 개의 스치로풀 박스에 흙을 담아 작은 텃밭을 만들었다. “이제부터 이 방에서 책 읽고, 서예하고, 글 짓고, 명상하고, 해금 연주를 하면서 한 시절 지내보는 거야!” 낮에는 텅빈 거실에서 요가와 태극권을 익혔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창밖으로 산과 논과 마을이 훤하게 내다보이는 양평집에서는 매일 이렇게 1인 문화교실이 열렸다. 정약용선생은 유배지에서 그 많은 저서를 집필하였다는데 그렇게는 못할지언정 제가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즐기는 부지런함이야 감지덕지 실행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다짐을 굳게 먹은 때문이기도 하였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은퇴자의 외로움에 대한 묵중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평읍은 양평군의 군청소재지이다. 그래서 작은 읍내에는 경찰서, 등기소, 문화회관, 보건소, 미술관 같은 공공기관과 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대형마트와 극장 그리고 재래시장 같은 상업시설도 부족함이 없다. 높지 않은 산들에 둘러싸인 시가지 한켠으로는 점잖게 남한강이 흐르고 강변과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펜션과 전원주택들은 여인네의 악세사리처럼 이 도시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있다. 저녁녘이면 아내와 함께 밤벌레가 울기 시작하는 논두렁길을 걸어 나와서는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읍내를 쏘다니는 즐거움이 쏠쏠하다.

그러나 이러한 아기자기함과 여유로움이 한편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환갑도 되지 않은 팔팔한 나이에 이처럼 우아하게 자연을 벗삼기에는 내 삶의 여정에서 치러야 할 일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 도시에서의 한 시절이 ‘돌아와 깃드는’ 종착점이 아니라 또 한번 지나가는 그러나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기를 바란다. 총총한 밤하늘의 별들이 개울물에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은 양평의 밤을 선사해준 내 운명에게 미안하지만 이렇게 말해주어야겠다. “보내주신 선물은 한 동안만 사용해 보고 돌려드리겠습니다. 아직은 이렇게 귀한 선물을 소화하기에는 내가 아직 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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