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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평  |  cmkcap@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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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8.20  19: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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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란 벼가 폭우에 휩쓸려 병풍쓰러지듯 드러눕거나 여름내내 땅의 기운을 끌어올려 실하게 제모양을 갖춘 사과들이 가을햇살의 목전에서 때늦은 태풍으로 무수히 땅바닥에 뒹굴 때, 농부는 하늘을 우러르며 기막힌 가슴으로 눈물짓는다. 그러나 농부는 겨우내 그 시름을 앓다가도 새봄이 오면 또다시 그 논에 모내기를 하고 사과밭에 밑거름을 준다. 농부의 우직한 반복은 어떻게 그런 지독한 숙명이 되었을까?

나는 작년까지 양평에 전원주택지로 개발된 조그만 땅뙈기를 가지고 있었다. 애당초 때가 되면 적당한 가격으로 팔아먹을 요량으로 매입한 것이니 공연히 돈을 들여 담쌓고 도랑칠 사정은 아니었으므로 그냥 잡초가 무성하도록 방치하였었다. “심심한데 알타리무우라도 한번 심어봐? 재미있겠는데?” 마음이 발동한 것은 작년 봄 사월이었다. 맨땅을 괭이로 파서 스무평 정도의 밭을 만들고 이랑을 돋구었다. 종묘상에서 퇴비 한 자루를 사다가 뿌리고 일주일 후에 씨앗을 뿌렸다. 사나흘이 지나자 “으와!” 신기하게도 파릇파릇 싹이 돋았다.

나는 주말마다 김매고 풀뽑고 물주며 비지땀을 흘렸고, 40일쯤 지나서 땀의 결실을
거두어 들였다. 그러나 그 건 알타리무우가 아니었다. 차라리 민들레 잎사귀에 산삼뿌리라고 하는게 나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아까워서 김치를 담궜으나 맛이 씁쓸하여 식구들은 찍지도 않는다. 나 혼자서 얼굴을 찡그려 가며 먹다가 결국 태반을 버렸다. 나의 첫 농사는 그렇게 ‘토질이 척박하여 땅심이 약한 탓‘이라는 결과분석을 얻은 채 비참하게 막을 내렸고 몇 달후에 그 땅은 팔렸다.

작년에 이사온 양평집, 올 봄에 나는 여기서 두 번째 농사에 도전하였다. 한 평도 안되는 작은 베란다에서 였지만 커다란 화분을 일곱개나 들여놓고 흙을 퍼다 나르고 퇴비를 듬뿍 사다가 섞어 주었더니 창문틈으로 흘러드는 흙냄새가 제법이었다.고추묘목 열그루, 상추묘목 열그루, 게다가 쌈채소가 네그루나 심어졌다. “올 여름엔 풋고추 사먹을 일 없겠군. 나도 고추농사 짓는 농업인이렷다. 히히히”

매일같이 물주고 보살피며 가끔은 상춧잎을 따다가 아침밥상에 올려놓곤 하였다. 어린아이 손가락 만한 고추를 다섯개나 땄던날은 하루종일 기분이 좋았다. 인터넷 동창까페에서 친구들에게 자랑을 늘어 놓기도 하였다. “친구들아, 상추와 고추가 풍성해질테니 그땐 막걸리 두어병 들고 오시게나! ” 그러나 그런 기쁨도 한 열흘간 뿐이었다. 상추는 비실비실 땡볕에 주저않고, 고추나무에는 진드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이십여일간 계속된 진드기와의 전쟁은 나의 완패로 끝났다. 설탕가루를 뒤집어쓴 듯 수천마리의 진드기에 시달리던 열그루의 고추나무를 고려장치르듯 모조리 뽑아버려야 했던 비내리는 여름날의 오후는 유난히 끈적거렸다.

헛김만 풍기던 여름도 제풀에 꺼져가는 듯 9월의 아침과 저녁은 제법 가을냄새가 난다. 한아름씩 흙을 끌어안고 베란다에 쭈그리고 있는 화분들이 베어진 고목의 등걸처럼 처량맞다. “그래, 지난 번에 심고 남은 알타리무우씨를 뿌려 보는거야!” 화분의 흙을 고르고, 퇴비를 보충하고, 물을 뿌렸다. 사나흘간의 인공호흡으로 다시 숨을 쉬게 된 흙속에서 초록빛 무우싹들이 파릇파릇 올라왔다. 이렇게 세번째 농사가 시작되었다. “이번엔 잘키워 봐야지! 땅심이 고르고 벌레가 생기지 않으면 되는거지? ”

오뚜기처럼 봄마다 새로운 씨를 뿌리는 농부나 햇볕아래서 부끄럽게 피어나는 새싹들은 언제나 간절한 결실에의 소망을 안고 죽는 날까지 거칠게 숨을 쉰다. “그래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는 그 것을 가치있게 하는 어떤 소망이 있을 거야” 나는 알타리무우에 물을 줄때마다 숨결같은 나의 소망에 대해서도 주문을 걸기로 하였다.“모든 것이 평안하게 이루어지이다” 고개를 들어 보니 앞산의 머리꼭대기에는 흰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들판에는 농부의 소망들이 무르익고 있었다. 가을빛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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