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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몰락
윤기평  |  cmkcap@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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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9.29  21: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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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내가 운영하던 검도도장에서 초등학교 5학년생인 도원이가 같은 학년의 여학생 두 명에게 선채로 발로 차이고 뺨을 맞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도원이를 상담실로 불렀다. “도원아, 운동도 잘하고 덩치도 훨씬 큰 사내 녀석이 계집애들한테 매를 맞고 꼼짝도 못하다니. 이게 말이 돼? 무슨 잘못을 한 거냐?” “잘못한 게 있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에요. 차라리 맞는 게 나아요. 여자애들 때렸다가는 학교에 가서 선생님한테 죽어요. 그리고요, 여러가지로 골치 아파져요!”

최근에 한 TV뉴스에서 기막힌 보도가 있었다. 공기업 직원인 30대 후반의 남편이 아내로부터 지속적으로 심한 구타를 당해오다가 견디다 못해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는 이를 이유있다고 판시하여 이혼을 허락하였다는 것이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운영하는 내 친구는 이런 말을 한다. “남자가 부동산 매매나 임대차계약체결을 약속하고 가는 경우는 거의 그 계약이 성사되리라고 기대하지 않아, 집에 가서 아내가 반대하면 꽝이거든. 집사고 파는 결정권은 대부분 아내에게 있어 남편은 운전기사일 뿐이지...”

50대 후반의 어느 택시 운전기사가 푸념하던 말은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요즈음 처자식은 남편이나 애비를 돈 벌어다 주는 기계정도로 알아요. 돈 못 벌어다 주면 사람취급을 안해요. 굉장히 비참하고 외롭죠!”

토요일 저녁, 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쏟아져 나온 한 무리의 중년여자들은 바쁘게 핸드폰으로 저마다의 남편을 호출한다. 누구의 남편이 더 빨리 아내를 모시러 차를 몰고 오는지, 누가 남편을 복종심 충만하게 잘 조련했는지, 누가 더 철저하게 남편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뽐내기 경쟁이라도 하는 듯하다. 누가 더 좋은 차를 몰고 재빠르게 마님을 모셔가는가의 결과에 따라 그 날 남편들의 신세가 결정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혹은 토크쇼에서 남자의 어리석음과 철없음이 희화화되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다. 두 자녀를 키우는 아낙네는 “우리 집엔 애가 셋이랍니다.” 하면서 남편을 또 한명의 철없는 아들로 몰아붙이고 그의 바보같은 행적을 나열해가면 좌중은 한바탕 웃음으로 떠들썩 하다. 천덕꾸러기 남자가 여자에게 봉변을 당하고 자빠지며 깨지는 모습은 통쾌한 웃음거리로 코미디 프로그램의 단골메뉴가 된 지 오래다. 드라마 속에서도 여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남자는 여자가 후려치는 당찬 손매에 뺨따귀를 얻어 맞고는 눈을 껌벅이며 서있어야 한다.

명동거리에서 어느 젊은 녀석이 난리 법석을 떨고 있다. 전기기타와 드럼으로 중무장한 밴드가 사랑의 세레나데를 연주하는 동안 젊은 녀석은 예쁘장한 여자 앞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린 채 100송이의 장미꽃을 두 손으로 높이 받혀 올리고 있다. 그리고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외친다. “영숙아, 사랑한다아아~” 몇 달치 아르바이트 임금을 퍼부은 것인지 아니면 부모의 호주머니를 털어낸 것인지는 몰라도 녀석은 저 비싼 청혼이벤트를 통해서 제가 평생 먹여 살려야 할 여자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다.

화요일 오전 11시의 동네 찜질방에는 한 명의 젊은 남자와 두 명의 늙은 남자 그리고 20여명의 동네 아주머니와 할망구들이 따뜻한 실내기운에 몸을 녹이고 있었다. 평일의 낮 시간이고 보니 대부분의 남자들이야 직장으로 나갔을 터이고, 애들을 학교에 보내고 난 아낙네와 할 일없는 할망구들의 수효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여자들은 아는 사이대로 삼삼오오 둘러 앉아 김밥이며, 떡이며, 각종 과일을 풀어놓고 깔깔대며 여유롭다. 젊은 남자와 두 명의 늙은 남자는 여자들의 눈길을 피하기라도 하듯 저만치로 꺼져 있다. 그 때 어느 할망구의 분명하고도 커다란 목소리가 삐져나왔다. “요즘 남자들 불쌍해! 우리 집 아저씨도 퇴직하더니 허구한 날 술이나 퍼마시고 갈 데 없이 집에만 처박혀 있더라구. 놀 줄도 몰라요! 끽해야 산에 가는 거지. 아유! 답답해!”

지자체가 운영하는 문화센터의 가요교실에는 남자가 없다. 노래 전문강사의 노련한 진행, 팡팡 터지는 일렉트릭 반주, 게다가 흥겨운 율동까지 하면서 아낙네들이 18번 레파토리를 늘려가는 동안에 은퇴한 초로의 남자들은 소주 한잔에 몸을 싣고 게슴츠레한 노래방에서 ‘광화문 연가’에 흔들린다. 남자들은 왜 가요교실엘 가지 못하는 것일까? 영감들은 왜 게으른 아침부터 탑골공원 뒷골목으로 모여드는 걸까?

최근 젊은 여자배우가 출연하는 TV광고 문구에 이런 게 있다. “여자라서 행복해요!” 또 이런 것도 있다 “감히 여자를 기다리게 해?” 귀여운 여인의 투정같은 애교라고 대범한 척 웃어 넘기기에는 너무도 엄연한 현실이 되어버린 남자의 몰락이 눈시리게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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