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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대형건설업계는 꼬리를 물고 계속된 ‘담합’제재 때문에 제대로 영업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의 조사·압수수색이 이어졌고, 업무담당 임원들은 공정위와 검찰과 경찰에 불려 다니느라 한해를 다 보냈다.
2001년까지는 거의 없었던 담합 적발건수가 2012년 4건, 2013년 2건에서 작년에는 무려 18건에 달한 것만 봐도 심각성을 알 수 있다.
제재를 받은 건설업체가 42개사에 공정위 과징금이 8천496억원에 이른다.
공공공사 좀 한다하는 웬만한 대형건설회사들이 모두 포함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초 주식시장에 발표한 2003년도 영업이익이 수억 원에 불과했던 한 대형건설회사는 작년에 과징금을 1천억원 넘게 내기도 했다.
과징금 때문에 문 닫는 회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말이 마냥 엄살만은 아닌 것이다.
왜 작년에 유독 담합 적발건수가 많았을까.
이번 담합사태의 단초는 아마 ‘4대강 담합사건’일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재정부담을 피하기 위해 민자사업을 계획했던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주축이 돼서 선두 건설회사들을 모아 놓고 민자사업 참여를 타진했으나, 대부분이 어려운 회사 사정과 투자회수의 불투명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하자, 결국 국가예산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선회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4대강 시범사업이 턴키로 집중 발주되면서, 자연스럽게 최초 민자 투자를 권유받았던 대형건설업체들이 나눠서 공사를 수주하는 형국으로 흘렀다는 것이다.
건설회사들은 당시 대형 수자원개발 토목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 건설업체가 한정된 데다 발주가 집중되면서, 바지선 등 공사에 필요한 건설장비와 기술력이 동시에 투입되려면 물리적으로 여러 회사가 공사를 나눠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입장을 설명한다.
이후, 4대강 사업에 대한 야당의 공세가 이명박 정권 내내 지속되더니 2003년 공정거래위원회가 강도 높은 담합조사를 하면서 소위 ‘리니언시’ 사태가 시작된다.
‘리니언시“란 ’자진 신고자 감면제‘를 말한다.
담합행위를 한 기업들에게 자진신고를 유도하기위해 담합 사실을 처음 신고한 업체에게는 과징금 100%를 면제해주고, 2순위 신고자에게는 50%를 면제해주는 식으로 담합행위자 상호 간 불신을 자극해 담합을 적발해내는 제도다.
공정위 조사에서 4대강 참여업체들은 처음에는 앞에 설명한 상황을 주장하면서 업체간 담합을 부정했으나, 리니언시를 염두에 두고 담합을 시인하는 업체가 생겨나면서 결국 참여업체들이 무더기로 제재를 받게 됐다.
그 다음부터 나타난 리니언시 제도의 위력은 실로 대단했다.
건설업체들이 다른 공사들에 대해서도 하나 둘 리니언시 혜택을 받기 위해 공정위에 자진 신고하기 시작했고, 자진신고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소위 리니언시 ‘보복전’ 양상까지 보이더니, 담합을 주도한 업체가 제일 먼저 달려가 리니언시를 하는 등 건설업계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의 지경에 이르렀다.
2003년부터 폭발적으로 늘어난 건설공사 담합 자진신고로 작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조사를 끝낸 순서대로 무려 18건에 42개사를 제재했다.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업계에는 공정위에 자진 신고된 담합조사 대상이 수십 건에 이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고, 공정위에 리니언시를 하러 가면 “먼저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세요” 한다는 우스게 소리마저 들린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필자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1980년대 말에만 해도 입찰담합은 과거부터 이어 온 관례와 같았다.
모든 대형 공공공사는 입찰담합 절차를 거쳤다.
건설 입찰담합을 ‘정한 순서대로 돌려 먹기’로 오해하는 일반인들을 위해 조금 설명하자면, 당시 1군(초대형 종합건설회사들로 대략 도급한도액 순위 1위부터 50위 내외 정도) 건설회사들은 공공공사에 대해 입찰 전에 세칭 ‘연고권’의 경중(經重)으로 공사 수주 업체를 정했다.
공공공사가 발주되면 일단 각 건설회사들은 발주된 실적조건에 따라 이번 공사 입찰에 참가가 가능한 다른 회사들에게 “연고권‘을 주장하는 전화와 편지를 보낸다.
‘연고권’이란 다른 경쟁사에 비해 우리 회사가 이 공사를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을 증명해서 경쟁업체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권한이다.
단어 뜻과 같이 발주된 공사가 이전에 우리가 시공한 공사와 연결될 경우가 연고 1순위다. 그 지역의 지반이나 현장여건에 익숙하고, 현장에 장비가 있다면 장비이동비용도 절약 할 수 있다는 등의 이유다.
공공공사 입찰은 각사가 주장하는 ‘연고권’ 경쟁으로 시작된다.
각사마다 그럴듯한 연고권이 한두 개 있기 마련이고, 서로 자기 연고가 세다고 주장한다.
입찰참가업체들끼리 연고권에 대한 경중을 어느 정도 가리면 가장 연고가 세다고 인정받은 공사수주 유력업체(당시 이 업체를 ‘신랑’이라고 불렀다)가 입찰참가업체들을 식당에 불러 모아 놓고, 공사를 우리 회사가 할 수 있도록 밀어달라고 요청했다.
식당에 모인 업체들이 모두 동의하면 담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 업체들 중 하나라도 자신의 연고권이 더 세다며 거부하면 담합은 깨지고 가격덤핑경쟁으로 전환됐다.
사전에 업체들끼리 일종의 PQ(사전자격심사)심사를 끝내는 것이다.
당시 업체간 확정된 담합 약속은 확실히 지켜졌다.
‘우라기리’(일본말로 ‘뒤에서 칼로 벤다’는 뜻)라 하여 약속을 깨고 신랑사보다 투찰금액을 낮게 써서 공사를 채간 회사 임원은 업계에서 즉각 퇴출됐다.
이처럼 수많은 공사가 나올 때 마다 담합을 위해 연고권을 서로 설득하러 다니다 보니, 건설회사 업무부 사람들은 자신들의 회사보다 다른 회사 업무부 직원들과 더 친했고, 경쟁자이면서도 가족과 같았다.
그들 간에는 강한 신뢰와 동업자 의식이 있었다.
상대방의 설득을 거부하는 것은 문제되지 않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용서되지 않았다.
세월이지나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새로 들어선 김대중정부는 취약한 회사들의 자본구조를 확립키 위해 여러 정책을 추진했는데, 그중 ‘공공공사 적격심사제도’의 경영상태 평가항목중 부채부문 만점 받을 수 있는 비율을 200%미만으로 대폭 낮췼다. 이로인해 엉뚱하게도 오랜 세월 이어 온 건설업계의 담합구조가 깨진다.
부채비율을 갑자기 크게 낮출 수 없었던 대형건설업체들이 중견건설업체들과의 입찰경쟁에서 밀리면서 사실상 담합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검찰이 건설담합에 대해 집중적인 수사와 처벌을 하면서‘연고권’을 내세운 입찰담합은 90년대 말 완전히 사라졌다.
그로부터 10여년.
담합이 사라졌다 해도 각 건설회사 업무부간 유대와 신뢰의 전통은 이어져왔다.
서로의 경조사에 빠짐없이 나타났고, 좋은 일과 나쁜 일에 진정성 있는 축하와 위로를 주고 받았다.
또 옛날과 같은 본격적인 담합은 없어졌다 하더라도 정보교환과 대관업무 등의 공통 관심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턴키입찰에서 가격경쟁을 배재하고 기술평가로만 경쟁하자는 묵계도 서로 관리해야 했다.
건설업계는 지금도 턴키입찰에서 가격경쟁을 배재하자는 묵계가 담합에 해당한다는 공정위와 검찰의 입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다.
턴키입찰을 하는 목적이 좋은 설계로 품질 좋은 시설물을 확보하자는 것이므로 설계경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턴키입찰에서는 업체간 가격경쟁을 하지 말자고 서로 약속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가격경쟁을 피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예산대비 낙찰가격이 90%이상이면 담합 징후가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주장을 계속했었다.
그러나 이번 리니언시 사태로 건설업계의 주장 근거도 무너지고 건설업계의 신뢰와 의리도 같이 무너졌다.
서로 경쟁하듯 공정위에 달려가서 턴키입찰에서 “우리 담합했어요”하고 자진 신고한 주제에 그건 담합이었네, 아니었네 하는 주장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제는 동업자라며 서로 얼굴을 쳐다 볼 면목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이제 담합은 완전히 사라졌다.
‘리니언시’제도가 존재하는 한 담합은 다시 발붙이기 힘들 것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선 것이다.
그러나 ‘담합 퇴출’비용으로 치룬 건설업계의 신뢰와 의리가 가슴 아프다.
이제 치열한 경쟁만이 지배하는 공공건설입찰시장. 반목과 소송만이 난무하는 정글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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