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담합에 대한 제재조치를 시작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건설업계에 대한 담합조사와 제재가 지속적이고 강도 높게 이어지고 있다.

최근 대구지하철 3호선 담합 제재뿐 아니라 경인운하, 호남고속철도 건설, 원주~강릉 철도건설, 고양삼송 수질복원센터 건설공사, 운북하수처리장 증설공사, 대구하수처리장 증설공사, 인천 검단일반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시설 설치사업 등 턴키. 최저가 가리지 않고 전방위 적인 담합조사와 제재조치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내노라 하는 건설회사들 가운데 제재를 받지 않은 업체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업계는 공정위가 지난 2012년 3월 개정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른 부당행위 소멸시효(5년)가 도래하기 전에 조사를 마치려는 것으로 짐작한다.

이대로 가다간 담합으로 적발된 업체들이 올해 물어야 할 과징금만 1조원대에 달할 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대형 건설업체들이나 그룹소속 건설업체에게도 몇십-몇백억원의 과징금은 경영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는데, 가뜩이나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는 중견건설업체들은 회사 존립에 문제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예 이미 경영난을 버티지 못해 무너진 화의나 법정관리 업체들은 과징금을 면제 받지만, 간신히 숨만 헐떡이는 중견업체에게는 치명타가 될수 밖에 없다.

건설업계가 뿌리 깊고 관례적인 담합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은 반성해야 마땅하다. 또한 법규를 어겼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 옳다.

그러나 건설산업의 생산체계나 수익구조는 타 산업과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는 점을 정부도 인식해 주길 바란다.

제조업은 물건을 먼저 생산하고 그 물건의 생산 원가를 바탕으로 이윤을 붙여 물건 값을 정한다. 투입된 비용과 판매된 금액과 그에 따른 이익을 사전에 예측 가능하고 또 결과도 거의 정확하다.

건설업은 공사를 완공하는데 투입비용이 얼마 들어갈지 대략 짐작만 할 뿐, 정확히 알 수 없는 상태로 입찰에 참가하고, 또 업체들간 경쟁한다.

경쟁사 보다 낮은 가격에 투찰하려면 짐작하는 가격에서 얼마쯤 낮게 쓰면 손해는 안보겠다고 또 짐작해야 한다.

짐작만할 뿐이고 실질적인 손해 금액을 알 수 없으니, 저가 경쟁은 끊임없는 덤핑으로 치닫는다.

따라서 건설산업은 발주처가 입찰 참가업체들의 기술력을 정확히 변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을 경우, 가격 경쟁에 내몰릴 수 밖에 없고, 자구책의 일환으로 담합 방법을 찾게 되는 것이다.

정부도 국내 공공공사에 대해서는 공정경쟁과 담합방지를 외치지만, 해외건설공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나서서 우리나라 건설업체간 경쟁을 자제시키고 있지 않은 가.

이는 정부가 해외건설공사에 대해서는 사실상 담합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고, 정부 역시 건설산업의 생산체계나 수익구조와 관련한 딜레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제 담합을 뿌리뽑겠다는 정부의 굳은 결심은 건설산업 전체에 각인됐다.

또한 공정위의 ‘리니언시(자진 신고자 과징금 감면 및 고발 면제제도)’제도를 앞세운 담합 조사가 매우 효율적으로 강력한 성과를 내고 있는 것도 분명해졌다.

이로인해 이미 건설산업의 담합구조는 거의 깨졌고, 오히려 건설업계는 리니언시 보복사태로 점철되고 있는 실정에 까지 이르렀다.

건설업체들이 앞다퉈 이전에 자신들이 했던 담합을 공정위에 고발하는 판이니, 앞으로 국내 공공건설시장에서 담합은 꿈도 꾸기 어렵다.

정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추구하는 정책적 목표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나, 적어도 건설산업에서 담합은 확실히 뿌리 뽑힌 것으로 보인다.

건설회사는 쓰러지면 컴퓨터 몇 대와 책상뿐이 남지 않지만, 실력있는 중견건설회사로 성장하려면 수 십년의 경험과 기술력이 축적돼야 한다.

지금 건설시장에서는 실력있는 건설회사들이 경영 위기의 끝에 봉착한 실정이다.

정부의 정책적 목표가 건설산업 자체의 붕괴가 아니라면, 이제 건설산업의 실상과 처지를 고려하는 정치적인 검토를 해주길 바란다.